핵발전소가 폭발하면 사람들은 의외로 행동한다.

핵발전소가 폭발하면 사람들은 의외로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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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낙원이 있다.

-탈핵연극 ‘낙원’ 리뷰

송희숙 시민기자

낙원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낙원특별시의 핵발전소가 폭발한다. 주인공 ‘정우’도 서울 누나에게 찾아가지만 누나는 집에 아이가 있다는 핑계로 정우를 돌려보낸다. 낙원의 주민 정우는 이미 ‘피폭된’몸 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낙원으로 돌아온 정우의 일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매일 인터넷으로 낙원의 상황을 전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낙원에서 버려진 채 죽어가는 동물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는 꽃과 사료가 든 양동이를 들고 매일 가축들을 찾아간다. 방사능과 죽음만이 가득한 낙원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그곳은 방사능이 가득한 죽음의 땅이었다. 낙원 바깥에 사는 ‘민경’은 정전을 걱정했다. 어쩌면 낙원특별시에 핵발전소를 만들어 낙원을 꿈꿨던 대한민국 전체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연극 ‘ 낙원 ‘ 티켓/ 에너지정의행동 오송이 활동가

 

 

지금, 여기 낙원이 있다.

매일 인터넷으로 중계를 한덕에 정우는 인기스타가 됐다. 이를 동경하던 회사원 ‘준호’는 마침 ‘방사능을 막아주는 스프레이’를 판매하라는 상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낙원으로 들어온다. 동물 애호가인 민경은 정우가 낙원의 동물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낙원으로 들어온다. 국정원에서는 낙원을 폭로하는 ‘정우’가 눈엣가시다. 국정원 직원인 ‘재욱’이 그런 정우를 잡으러 낙원에 파견된다. 그러나 곧 낙원은 통신이 끊기고 도로가 차단된다.

“어서 낙원을 탈출해요.”

“안 나가요. 어딜가요.”

“아니, 어떻게든 살아야할 거 아냐”

“내가 다닌 학교 부모님, 여기 있어요. 어딜 가요. 나가요. 당신이.”

준호와 재욱은 정우에게 낙원을 탈출하자고 하지만 정우는 완강하게 거절한다. 구호소로 가보자는 말에도 정우는 아무런 보호 장비도 물자도 지원되지 않는 집을 고수하며 꽃과 사료를 들고 동물들에게 향한다. 인터넷방송을 매일 할 뿐이다.

연극 ' 낙원' 포스터. 남자는 꽃과 양동이를 들고 어딜 향하는 것일까? / 연극 '낙원'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
연극 ‘ 낙원’ 포스터. 남자는 꽃과 양동이를 들고 어딜 향하는 것일까? / 인터파크 연극 ‘낙원’ 예매 페이지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상은 어제와 같이 이어지고 싶다. 정우를 돌려보낸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우와 남은 세 사람도 더 이상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방을 청소하고 통조림을 먹는다. 캔 커피를 마시고 게임을 즐긴다. 어차피 나갈 수 없다면,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지만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는다면, 그저 낙원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심지어 민경과 재욱은 사랑에 빠진다. 그들에게 이곳 낙원은 평범한 삶의 터전이 돼어 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의연한 일상에 나는 아직까지 제한구역에 살고 있는 체르노빌의 노인들이 떠올랐다. 사고가 난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은 그곳에서 나는 채소를 먹고 특별한 방제과정 없이 살아간다. 대피하지 않는 그들이 무모해보이기만 했다. 후쿠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한구역에서 대피한 수 만 명의 주민들은 비상대피 구역이 해제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미련해 보이는 이들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체르노빌, 후쿠시마를 위험구역, 제한구역이기 전에 그들의 삶을 이어가는 그 자체로 존엄한 장소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상이 행해지는 모든 ‘지금, 여기’가 진정한 낙원인지도 모르겠다.

핵발전소 문제는 일상을 온전히 이어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

하지만 결국 낙원은 점점 모든 것이 소멸하는 소실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방사능을 막아준다는 스프레이도, 남녀 간의 사랑도. 그리고 정우는 울부짖으며 아무도 보지 못할 카메라에 대고 녹화를 계속한다.

“여기는 낙원입니다. 저는 임정우입니다. 저는 죽습니다. 이곳은 낙원입니다.” 그들이 낙원에서 일궈온 일상은 사고를 일으킨 핵발전소와 함께 콘크리트에 뒤덮인다.

연극 '낙원' 의 주인공 임정우/ 연극 '낙원'의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
연극 ‘낙원’ 의 주인공 임정우/ 연극 ‘낙원’의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

 

연극 ‘낙원’은 핵발전소 문제를 단순히 부품비리, 온배수로 인한 생태계 파괴, 노동자의 피폭, 거대 자본의 횡포, 방사능 오염과 같은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 연극 ‘낙원’은 핵발전소로 어떻게 우리의 일상이 파괴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너무나 현실적인 일상의 전개가 처참함을 더한다.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재개발이 낙원구 행복동에 살던 난쟁이 가족들의 삶을 서서히 몰락시켰듯이 말이다. 연극 ‘ 낙원’은 핵발전소 문제가 일상을 온전히 이어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