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석여사’들에게 ;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자

수많은 ‘석여사’들에게 ;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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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석여사들에게 ;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자

– 영화 <판도라> 감상기

에너지나우

정신없는 시국에서 정신없이 사느라 문화생활이라고는 맨날 희망사항 뿐이던 요즘. ‘탈핵영화’ 타이틀 덕분일까 영화 <판도라> 시사회에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모처럼의 영화관 나들이에 마음에는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결국은 쿵쾅쿵쾅 심장을 오그라뜨릴 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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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핵발전소를 싫어하는지 아나?”

바다가 있는 조용한 마을, 오래된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 김재혁은 핵발전소에 의존해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기회만 닿으면 핵발전소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버지와 형의 목숨을 앗아간 그 발전소는 언제 어떻게 변해버릴지 모를 괴물 같은 것이기에.

실제로 강진이 일어난 그 날, 핵발전소는 폭발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마을을 떠나야 한다. 꽉 막힌 도로 위를 담요 하나 뒤집어 쓴 채 달리고 있는 형수 정혜와 조카 재민이의 모습에 사탕 하나 걸린 듯 심장을 조여 오는 건 비단 나뿐일까.

 

대피 매뉴얼이요? 그런 건 없습니다.”

자기에게 도달하는 정보가 진실인지조차 구분이 안 되는 무능한 대통령과 대책 마련보다는 통제가 편한 국무총리. 긴급한 상황 속에서 340만 명에 대한 안전대책을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뉴얼은 없고, 만들 수도 없다는 말이다.

만약 지금 우리나라에 비슷한 재난이 닥친다면 이 영화 그대로 옮겨오지 않겠는가. 사실 무책임한 재난컨트롤타워는 재난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황 설정이다. 하지만, <판도라>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유는 어이없는 작금의 현실 탓일 게다. 픽션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논픽션인 상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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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몰랐다. 미안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가장 큰 이유는 핵조선을 탈출하고자 했으나 결국 영웅으로 생을 마감하는 재혁도, 무능력해서 국민들에게 사과만 하는 대통령도 아니다. 바로 남편과 큰아들을 핵발전소에서 잃고도 ‘꺼지지 않는 불꽃’에 대한 강렬한 믿음으로 작은 아들 역시 핵발전소에 가둬 두는 재혁 어머니 석여사다. 불안하다며 멀리 가자는 며느리의 말에 그럴 리 없다며 호언장담하다가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되는 석여사. 결국엔 ‘이럴 줄 몰랐다, 미안하다’며 손자를 지키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석여사.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석여사가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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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한 현실에서

오늘 12월 5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경주 지진으로 가동을 중단했던 월성 1~4호기 핵발전소 재가동을 승인했다. 9월 12일 강진 이후 540회의 여진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진으로 불안한 핵발전소에서 ‘혹시나’ 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판도라>에서는 시민들의 안전과 목숨엔 관심 없이 이윤창출과 사고은폐에만 급급한 책임자들에게 “개소리 하고 있네!”라며 분노하는 시민들이 있다. 사고는 ‘지들’ 책임인데 왜 국민들에게 책임지라고 하느냐며 일갈하는 시민들이 있다.

 

결국 영웅담과 가족애로 마감하는 영화의 결론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판도라>를 권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더 큰 사고 치기 전에, 더 큰 사고 나기 전에 현실을 돌아보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현실에 <판도라>는 많은 말을 던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