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내려온다. 서울한복판으로 핵이 내려온다.

핵내려온다. 서울한복판으로 핵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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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드럼 캠페인단이 핵폐기물 모형을 가지고 서울역사를 행진하고 있다. 드럼통에는 방사능마크와 주의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캠페인단은 방진복을 입고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 오송이

핵내려온다. 서울한복판으로 핵이 내려온다.

글 오송이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퓨전 국악, “범 내려온다”의 한소절이다.
수궁가중 한 대목으로 토끼를 찾아 묻으로 올라온 거북이가 그만 턱이 빠져 토선생을 부른다는게, 호선생으로 잘못부르는 바람에 장림 깊은 산골짜기에 지내던 호랑이가 신이나서 마을로 내려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서울에 호랑이만큼이나 쌩뚱맞은, 핵이 내려왔다.
무슨일일까?

▲ 서울역 행진 시민들이 방진복을 입은 캠페인단의 행진을 바라보고 있다. 드럼통은 무섭고 방진복도 낮설다. 이들은 왜 서울로 오게된 것일까. ⓒ 오송이

 

2020년 10월 30일 오전 11시 서울역앞, 핵폐기물 드럼통 모형이 일렬로 줄지어 간다. 드럼통 모형아래는 바퀴가 달려있고,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 모형을 밀고 가고 있다. 이내 곧 싸이렌이 울리더니 사람들은 쓰러진다. 그리고 나래이션이 나온다.
” 핵발전소를 가동하면 다양한 형태의 핵폐기물이 발생하고…”

 

▲ 서울역 다이인 퍼포먼스 행진하던 사람들이 쓰러졌다. 고준위핵폐기물의 경우 그 앞에 사람이 몇초만 서잇더라도 사망할만큼 매우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드럼통은 모형이었지만 두려움이 느껴졌다. ⓒ 오송이

 

“… 고대 문화는 동굴벽화와 인상적인 건축물을 남겼지만, 우리 문화는 바로 이 유독한 핵폐기물을 길이길이 남길 것이다. 먼 훗날 사람들이 우리의 핵발전- 화석연료의 시대를, 후손에게 어리석은 짓과 무책임한 짓을 한 시대로 기록하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서울역 2층에서 촬영한 장면 핵폐기물을 나르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모두 쓰러져있다. 캠페인단은 모두 경주울진부산지역의 시민들이다. 마치 그들이 쓰러져가는것만 같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핵발전소에 있는 핵폐기물들은 가득차고 있고 정부는 최근 핵폐기물을 임시저장하기 위한 시설을 경주에 추가건설하기로 결정했기때문이다. ⓒ 오송이

 

비록 모형이었지만 사람들은 방사능마크와 노란색만으로도 경계하는듯했다. 우리나라는 핵발전으로 전기를 만들고 있기때문에, 전기를 쓰는건 핵폐기물을 만들어내는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어디에 묻히는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고민한적이 없었다. 서울은 가장많이 전기를 소비했지만,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핵폐기장 부지로는 꿈조차 꿔본적이 없었다.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한 서울 한복판으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핵이 내려온 이유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 서울역앞 집회 서울은 정말 예외일까. 쓰레기를 가장 많이 만든 서울에 핵폐기물을 처리하지 않는것은 공평한 일일까? ⓒ 오송이

 

마침, 서울역사 한켠에서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홍보를 하고 있었다. 경주에는 이미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반입되고있고 고준위핵폐기물을 처리하는 임시시설도 경주에 지어질 예정이다. 서울이 아닌 곳으로 핵쓰레기라는 폭탄이 돌아다니고 있는것이다. 핵폐기물을 관리하는 공단은 서울에서 대체무엇을 홍보하려 했던것일까?

 

▲ 서울역 원자력환경공단 홍보부스 부스에서 나눠주는 홍보물은 공단과 핵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소개가 한글과 영문으로 나와잇었다. 그저 안전하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 오송이

 

호랑이앞에 납작 엎드린 자라의 마음이 되어버려 돌아오는길, 흘러나왔던 나래이션의 마지막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핵발전소지역 주민들의 희생과, 초고압송전탑건설로 인한 공동체와 환경의 파괴, 위험한 피폭노동을 댓가로 편리하게 전기를 사용해왔다.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핵발전시스템이 만들어온 수많은 위험과 문제, 갈등과 희생, 부정의와 불평등을 끝내고 이제는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